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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구석구석/봄(春)

동양 최대의 목조건물, 각황전이 자리잡고 있는 지리산 화엄사

by @파란연필@ 2013. 3. 28.




구례에 왔다면 산수유만 보고 가는 것 보다 천년고찰의 위엄이 가득한 지리산 화엄사에 잠시 들러보는 것도 좋을것 같네요.

 

지리산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인도스님 연기조사가

 

해회당(海會堂)과 대웅상적광전(大雄常寂光殿)을 짓고 화엄사를 창건한 후,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화엄십찰을 세우면서

 

큰 가람을 이루어 지금의 화엄사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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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화엄사 입구로 들어가는 첫관문인 일주문 입니다.

 

일주문 현판은 1636년 화엄사를 중건할 당시, 인조의 숙부였던 의창군 이광이 썼다고 전해지는데,

 

의창군은 일주문 현판 외에 화엄사의 대웅전 현판까지 썼다고 하네요.

 

이 당시 불교가 그리 환영받지 못하던 시기였는데, 왕손이 현판글씨를 남겼다는건 큰 의미가 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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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들어서고 바로 왼쪽에 커다란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이 건물은 최근에 새로 지어진 건물이며, 템플스테이를 위한 공간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요즘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템플스테이가 각광받고 있다고 하는데, 이곳도 아마 그렇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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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달여 앞으로 다가온 석가탄신일을 기념하기 위해 연등도 달고 여러가지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네요.

 

이 연등은 밤에 조명이 켜졌을때 은은하게 빛나는 풍경이 참 아름다운 것 같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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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을 걷다보면 조그만 비석을 하나 발견할 수 있는데, 이 비는 벽암선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벽암국일도대선사비라 불리우는 비라고 합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많이 소실되었던 화엄사를 중건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며,

 

화엄사 뿐 아니라 송광사, 해인사, 법주사 등 여러 사찰들의 중건을 위해 큰 역할을 하고,

 

나중에는 조선 후기의 불교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전해진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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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수련을 하느 스님들이 거처하는 곳이라 출입이 금지된 곳입니다.

 

역시 사찰은 이렇게 조용하고 고즈넉한 맛이 있어야 왠지 사찰다워 보이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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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500여년이 지난 건물 보제루 누각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입니다.

 

보통 사찰의 경우 대부분 일주문, 누각, 대웅전의 배치가 일직선으로 되어 있어 일주문을 지나 누각 밑으로 지나야

 

대웅전으로 향할 수 있는 반면, 화엄사의 보제루는 일주문과 일직선이 되질 않고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데

 

그 이유가 각황전, 대웅전, 대석단들이 장엄하게 펼쳐져있는 절 중심영역의 경관을 강조하려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하네요.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보제루 누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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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루를 지나 대웅전을 바라보고 왼편으로 눈을 돌리면 웅장한 목조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이 건물이 바로 동양 최대규모의 목조건물 각황전 이라고 합니다.

 

 

원래 각황전 이전에 장륙전 이라는 이름을 갖고 3층 건물로 자리를 잡고 있었으나, 임진왜란때 다 소실이 되고

 

조선 숙종 28년 때에 다시 지금의 건물을 지어 각황전 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다고 하네요.

 

각황전 이라는 이름은 중건 이듬해에 숙종이 직접 지어 형조참판 이진휴를 시켜 내려보냈다고 전해집니다.

 

건축물의 규모와 역사를 가늠해볼때 그 가치가 대단하여 지금은 국보 67호로 지정되어 관리를 받고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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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전 바로 앞에는 역시 국보 12호로 지정된 각황전 앞 석등이 있으며

 

계단 아래에는 보물 133호로 지정된 서오층석탑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화엄사에는 정말 국보와 보물이 많은듯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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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을 바라보며, 또다른 오층석탑인 동오층석탑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역시 보물 132호로 지정이 되어 있네요.

 

서오층석탑이랑은 약간 차이가 있는데 서탑보다 동탑이 장식이나 기단이 조금 더 단순하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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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장 하나에도 세심한 형상의 문양이 들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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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사찰을 들릴때마다 이런 모양을 한 나무통을 몇번 본적이 있었는데,

 

정확한 명칭은 '구시'라고 하네요. 용도는 밥통이라고 생각하면 된답니다.

 

예전에 전쟁이 났을때 승려들도 전쟁에 참여를 하여 승병으로 활동할 때에 사찰에서 밥을 지으면

 

저곳에 퍼놓고 보관하거나 먹었다고 전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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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을 지나 뒷쪽으로 돌아나가면 큰 대나무 밭이 보이고 대나무 밭을 지나면 조그만 암자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바로 이 건물이 구층암(九層庵)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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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층암 건물 뒤로 돌아가면 조그만 승방이 하나 나오는데,

 

여느 암자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나무 기둥에 눈에 띄는군요.

 

바로 모과나무 그대로를 이용해 기둥을 세웠는데, 이 기둥은 모과나무 통째로 잘라다 붙여 기둥을 세운 것이라

 

나무의 원형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게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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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층암 한쪽에 자리잡은 천불보전.... 그리고 그 앞에 심겨져 있는 모과나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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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보전 앞 석등 사이로 보이는 현판을 한번 담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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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방을 들르니 마침 스님께서 차 한잔을 우려 주시더라구요.

 

시간이 많다면 여유있게 차를 즐기고 가는 것도 이곳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생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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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곳에서 차한잔을 마시며 잠시 여유를 가져봅니다.

 

길거리에서 커피를 사다 마시는 것 하고는 또다른 기분이 드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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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적멸보궁이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계단을 올라야 갈 수 있는데, 저 계단수가 모두 108개라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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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개의 계단을 오르고 나면 4마리의 사자가 석탑을 이고 있는 왼쪽의 사사자 삼층석탑을 만날 수 있습니다.

 

2개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를 하고 있으며, 네 마리의 사자 안쪽 중앙에는 합장한 채 서있는 스님상이 있는데,

 

이는 화엄사의 창건 주인공인 연기조사의 어머니로 전해지고 있구요.

 

바로 앞 석등 중앙에 무릎을 꿇고 있는 스님상은 석등을 이고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한 모습이라 합니다.

 

 

보통의 탑과는 달리 네마리의 사자조각이 탑의 구성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불국사의 다보탑과 더물어 우리나라 이형(異形) 석탑의 쌍벽을 이루어

 

이역시 국보 35호로 지정이 되어 관리가 되고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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