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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구석구석/여름(夏)

청주 아이들과 가볼만한 곳 고인쇄박물관 손병희선생 유허지

by @파란연필@ 2020. 7. 27.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아이들 여름방학 시기가 조금 늦어질 듯 합니다. 아무래도 수업일수 부족으로 인해 각 학교들마다 방학을 시작하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기도 할텐데요. 그래도 짧은 방학기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충북 청주나 청주 근교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지금부터 소개해 드리는 곳을 유심히 살펴 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 직지의 고향, 청주 흥덕사지 고인쇄박물관

 

역사와 우리 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계실테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 처음 간행된 곳이 바로 이곳 청주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현재 전해지고 있는 기록에 따르면 직지는 고려 말 1377년 7월에 청주에 위치한 흥덕사라는 절에서 처음 금속활자로 인쇄되었다는 내용이 있는데요. 이는 독일의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본 보다 무려 70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 금속활자 발명국임을 입증하고 '직지'라는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알리기 위해 청주 옛 흥덕사 절터인 흥덕사지 부근에 청주 고인쇄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난 1992년 3월에 개관한 고인쇄박물관은 고인쇄와 관련한 우리나라 유일의 박물관이기도 하고요. 우리나라 목판에서부터 금속활자에 이르기까지 기록을 중요시했던 우리 민족의 고인쇄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직지 금속활자 복원판이 바로 눈앞에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청주 고인쇄박물관은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고요.

 

 

모두 3개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전시관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직지에 관한 모든 자료와 고려시대의 금속활자 인쇄술, 그리고 직지를 간행했던 흥덕사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전시관에는 고려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나라 전통 인쇄문화를 소개하고 있으며, 특히 조선시대 때 금속활자의 주조와 인쇄할동을 주관했던 주자소의 모습을 대형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3전시관에서는 우리나라의 인쇄술 외에도 세계 각국의 인쇄술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동서양 인쇄문화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독일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로 알려진 유럽의 인쇄문화도 바로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그리고 박물관을 나와 야외로 나오게 되면, 박물관 건물 옆으로는 흥덕사의 옛 절터인 흥덕사지가 나옵니다. 흥덕사지 쪽으로는 소나무 숲길을 따라 산책할 수 있는 직지산책로가 마련되어 있어 흥덕사지까지 산책을 즐기며 걸어가면 됩니다.

 

흥덕사의 절터만 남아있는 흥덕사지는 사실 이곳을 발견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흥덕사의 존재는 기록으로 알고 있었지만, 절이 모두 소실되어 그 절터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지를 못했는데, 1985년에 이곳에서 발굴된 탑터와 회랑터, 유물들을 살펴본 결과 이곳이 바로 흥덕사가 있던 절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흥덕사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었던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하고 간행했던 곳이기 때문에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데요. 현재 보이는 금당과 삼층석탑은 절터 위에 복원을 해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2. 애국독립지사 손병희 선생 유허지

 

작년 2019년이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해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 한 해였는데, 이제 곧 광복절이 다가오기도 하고 이러한 독립운동의 역사를 잊지 않고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기 위해 가볼만한 곳이 있으니 바로 3.1 운동의 주역이면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이었던 손병희 선생의 유허지가 바로 청주에 있습니다.

 

유허지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나 문화재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기록과 사실을 토대로 남아 있는 장소나 터를 말하는 곳인데, 손병희 선생 유허지가 잘 단장이 되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돌담 위에 32개의 태극기가 나란히 걸려 있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손병희 선생의 동상이 있는 곳에 태극기가 하나 더 걸려 있는데, 32+1개의 태극기가 모여 33개의 태극기는 민족대표 33인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손병희 선생의 유허지에는 선생이 태어나고 자랐던 생가터를 복원한 초가집 한채가 있습니다. 청주에서 태어나 22세가 되던 해까지 이곳에서 지내셨다고 하는데요. 초가집 내부는 안채와 헛간채로 이루어져 있고, 원형이 비교적 잘 유지가 된 상태로 복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생가 뒷쪽으로는 선생을 모시기 위한 사당인 의암영당이 있습니다. 국사책에서 손병희 선생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어도 정작 어떤 업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은데요. 젊은 시절 동학에 입문해 천도교 3대 교주가 되었고, 특히 민족 독립을 위해 교육과 계몽활동에 앞장 섰는데, 1919년에 보다 조직적이고 일원화된 3.1 만세운동을 펼치기 위해 당시 천도교 직영의 보성사에서 독립선언문 2만 1000매를 직접 인쇄하여 배포할 수 있도록 도와준 중요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사당을 나오게 되면 바로 아래쪽에는 의암정이라는 작은 정자와 정원이 보이는데요. 이것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다 의미가 있습니다. 정자 위에 올라서서 아래로 내려다 보면 정원의 모양이 태극 모양과 건곤감리 형태의 태극기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손병희 선생의 유품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의암기념관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전시실 중앙에 1914년 4월 8일에 촬영된 선생의 53회 생신 기념사진과 함께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모습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단재 신채호, 의병의 기수로 알려진 한봉수 선생 등 청주에서 독립활동을 했던 애국지사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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